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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대규모 리뉴얼 이벤트 - 황권

황권은 삼국지W에서 나오는 카드들 중에 출석률이 높은 장수들에 속합니다.

에피 1부터 7까지 정규에피 모두 출석을 합니다.

우선 정사에 나타는 황권의 기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황권전

유비 입촉시기

정사의 기록위주로 살펴보면 초기 유장의 휘하였다가 유비의 입촉때 유장의 항복으로 인해 유비의 휘하로 들어갑니다.

본래 익주군 파서 출신이며 어려서부터 유장에게 임관되었다는 기록을 보면 지닌바 재주는 상당히 뛰어났을 것으로 보입니다.

유비가 익주평정을 할 시기에 유장은 장송의 의견을 듣고 유비를 불러들여 장로를 치려 하지만 황권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유비를 견제합니다.

"좌장군인 유비는 용맹함을 떨치고 있는데 그를 이곳으로 불러들여 부하로만 대우하면 그의 마음을 충족 시키지 못할것이며 빈객으로 대우한다면 주군께스는 누란지위에 처하실것입니다. 국경을 폐쇄하고 황하가 맑아지기까지 기다림이 옳습니다."

이를 듣지 않은 유장은 결국 유비와 전쟁이 터졌고 대부분의 군과 현이 유비에게 귀순을 합니다. 당시 유장군의 뛰어난 책사로 평가받던 허정도 윱장을 버리고 도망가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유장이 결국 성문을 열고 유비에게 항복을 할때도 끝까지 혼자 성문을 열지 않다가 유장의 항복을 확인하고서야 편장군의 지위를 임명받고 유비의 휘하로 들어갑니다.

서중이 이 사건을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황권(黃權)이 이미 그 주인에게 충성스럽게 간언하였고 또 성을 닫아 굳게 방비하였으니 주군을 섬기는 예를 이룬 것이다. 무왕(武王)이 (은나라로 들어가) 수레에 내려 비간(比干)의 묘(墓)에 봉을 더하고, 상용(商容)의 마을에 표창한 것은 충현지사(忠賢之士= 충성스럽고 현명한 신하)에 대한 존중의 뜻을 명확히 밝히기 위함이었다. 선주는 임시로 황권을 장군으로 삼았으니 옳은 일이지만, 오히려 그 대우가 미비하고, 충의스러운 높은 절개를 기려 선행하는 자의 의지를 격려함에는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다."

유비 한중정벌시기

조조가 한중으로 내려와 장로를 쫒아내고 유비를 노리고 있을 무렵 황권은 유비에게 한중을 공략할 것을 간언합니다.

여기서 황권전에는 한중공방전을 건의하고 두호와 박호를 격파, 게다가 하후연을 잡는 정군산 전투까지의 공이 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대부분 유비군 책사들 중 법정 아니면 제갈량에게 한중공방전의 공이 쏠려있는데 이는 황권 역시 한중 공방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유추해 낼수 있는 기록입니다. 아마도 익주 토박이로써 지리와 정세에 해박하였을 것이고 이는 유비에게 신뢰로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다만 바로 이어진 유비를 따라나선 다음 전투에서 유비와 떨어지게 되고 다시한번 소속을 옮기는 일때문에 중요하게 다른 기록에서 다뤄지지 않았을 것이라 미뤄 짐작해 봅니다.

형주 정벌시기

관우의 죽음으로 격분한 유비를 황권은 오나라 수군의 강성과 수로의 흐름상 후퇴가 어렵다는 이유로 황권 자신이 먼저 형주로 들어갈테니 유비는 잠시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라고 건의를 합니다. 하지만 유비는 관우의 죽음에 본인이 직접 형주로 들어가고 황권에게는 군대를 통솔하여 위나라의 침입을 방비하라 하여 강북의 군대를 줍니다. 유비는 육손의 역습으로 부랴부랴 후퇴를 하지만 황권은 결국 탈출하지 못하고 항복을 한후 소속은 위나라로 바뀌게 됩니다.

당시 황권의 귀순소식을 듣고 촉군의 한 관리가 유비에게 황권의 식솔들을 처단할것을 건의하지만 유비는 황권을 버리고 온 것은 자신이라며 이를 거절합니다.

한때 와룡봉추를 거느려서 책사진영이 상당히 좋았는데 방통 법정은 익주에서 죽어버리고 제갈량 이외에 뛰어났던 황권마저 본인 스스로 버리고 온 셈이 되어버린 유비가 급 안쓰러워졌네요..

위나라 투항

황권등 많은 인사가 위나라에 투항했을때 조비는 주연을 크게 열어 이들을 반겼습니다.

조비는 황권에게 유비를 버리고 나에게 온것은 진평과 한신을 따르려는 것이냐 라고 묻지만 황권은 다만 자신은 항복한 일이 없고 길이 끊겼을 뿐이다라며 대답합니다.

조비는 그의 충정에 감동하여 진남장군과 육양후 시중의 관직을 더했고 수레를 같이 타고 다녔을 정도라고 합니다.

유비의 사후 조비측 책사들은 기뻐하지만 황권만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조비가 놀려줄려고 황권을 급히 출두하라고 분노한척하자 황권은 그래도 태연자약하게 출두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전령으로 같던 인물이 혼비백산하였습니다.

삼국지정사의 저자 진수는 그가 학식이 높고 기품이 곧고 바르며 도량이 넓었다고 평합니다

연의에서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데 황권이 유비에게 향한것이 거슬렸는지 왕루만 못하다라며 평가절하를 합니다.

여기서 왕루는 황권이 성문 여는것을 반대할때 직접 성문에 거꾸로 매달려 성문 여는것을 함께 반대했던 인물입니다.

아마 연의의 저자 나관중은 황권이 결국 유비를 다시 버리고 위군에 항복한것을 더 고깝게 봤을지도 모릅니다. 두번이나 항복한것도 한몫했을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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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권전 이외에 기록된 황권의 기록은 매우 적습니다.

 

선주전 - 장로가 조조에게 쫒겨 파중으로 왔을때 황권을 보내어 맞이하게 했지만 이미 장로는 조조에게 돌아갔다.

마충전- 유비가 오나라에 급하게 쫒겨서 촉으로 돌아왔을때 황권을 잃었지만 마충을 얻었으니 괜찮다.

이외에도 몇군데 나오긴하지만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에 이름정도만 껴놓은 정도라 다루지 않았습니다.

여튼 유비의 이릉대전에 같이 참전이후 전투관련 기록은 찾아 볼수 없었습니다. 다만 주위의 평가가 어느하나 나쁜것이 없고 황권의 인물 됨됨이를 좋게 평가하는 일 뿐입니다.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삼국지W에 등장기록을 살펴보았는데 상당히 괜찮은 통무지를 가진 지장으로 구성되어있었습니다.

다만 유비입촉 당시의 황권만 유난히 홀대를 받았는데 유장군 휘하였다는 것이 페널티를 받은것일까요?

삼국정립에서 법정과 비슷한 전략으로 유비의 한중공방전을 이끌었다는점을 자신이 나고자란 익주의 지형지물을 잘 이용했다는 점을 치면 유비입촉때의 황권에 대한 상향도 어느정도 납득이 갈것이란 판단하에 리뉴얼을 진행해 보았습니다.

2-2 입촉에피소드 황권

 

드라마 스샷은 신삼국지 드라마 67화 스샷 편집본입니다.

 

 

 https://youtu.be/mpW9pyh6Yxs?t=1958

삼국연의 . 유장이 유비에게 항복하여 익주를 넘긴다. 34분 부터

 

 

 

2-2 유비 입촉카드를 리뉴얼했습니다.

노련한노병 > 모사

기존 통 83 >84

기존 무 62 >64

기존 지 86 >96

​기존 정 80 >91

기존 지력이 너무 낮아서 쓸모가 전혀없는 상태였고 노련병종도 그다지 선호도가 없는데 병종마저 노병이라

사실상 방치사태였습니다. 이번기회에 전반적인 황권카드끼리 밸런스를 맞췄으면 좋겠습니다.

정치력도 높여주어 원정스킬이 쓸모있게끔 해주었습니다.

 

 

 


 

장수 관련 스탯 참고; by 꿀이삼

http://samw.dothome.co.kr

 

 

정사 삼국지

http://rexhistoria.net/history_sam